엔비디아·노키아, 美 상용망서 AI-RAN 통화 성공…블랙웰 GPU 서버 공개
삼성전자, KT·SKT 공급 계약·日 통신망 성능 개선…AI 인프라 경쟁 확대
통화와 데이터를 주고받던 이동통신 기지국이 AI 연산까지 맡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실제 5G 상용망에 AI 연산 서버를 연결해 통화하는 데 성공했고, 유럽에서도 통신 신호처리와 영상 분석 AI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수행하는 시험이 진행됐다. 엔비디아와 노키아,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들이 관련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통신망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AI 기반 무선접속망(AI-RAN)이 있다. 통신 신호를 처리하는 서버에서 AI 연산도 수행하는 기술로, 통신 품질 개선은 물론 공장 로봇과 영상 분석 같은 서비스에도 활용할 수 있다. 통신사들이 AI-RAN 장비 도입을 확대하면 지금까지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집중됐던 GPU와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통신망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통신망에 AI 연산 결합…美·유럽서 실제 시험
엔비디아와 노키아는 지난 21일 독일 베를린 GTC 행사에서 통신망을 분산형 AI 인프라로 전환하는 전략을 공개했다. 전 세계 20개에 가까운 통신사업자가 협력에 참여한 가운데,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존 5G 통신망에 AI 연산 기능을 결합하는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미국 T모바일의 상용망 시험이다. T모바일은 워싱턴주 벨뷰에서 엔비디아의 AI-RAN 서버와 노키아의 통신 소프트웨어를 기존 5G 코어망 및 상용 스마트폰에 연결해 통화에 성공했다. 연구시설을 벗어나 실제 운영 중인 네트워크에서 AI-RAN 기술을 검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유럽에서는 통신과 AI 작업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처리하는 시험이 이어졌다. 핀란드 엘리사는 실제 5G 환경에서 음성통화와 모바일 데이터, 영상 분석 AI를 동시에 처리했으며, 도이체텔레콤은 독일과 핀란드 연구시설에서 AI 기반 신호처리를 적용해 상향링크 데이터 처리량을 10~15% 높이는 실험실 성과를 거뒀다.
현장 시험은 내년에도 이어진다. 영국 BT와 도이체텔레콤은 2027년 현장 시험을 추진하고 있으며, 엘리사도 분산형 AI-RAN 구축을 확대하면서 상용 서비스 도입 가능성을 평가할 예정이다. 수십 년간 통화와 데이터 전송을 위해 구축한 통신망이 AI 연산까지 맡게 된다면, 통신사들이 보유한 기지국과 서버의 쓰임새도 달라진다.
삼성전자, KT·SKT 공급사 선정…일본서도 성능 개선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산업현장을 중심으로 AI-RAN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9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하이퍼 AI 네트워크’ 사업과 관련해 KT·SK텔레콤과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KT 사업에서는 유일한 글로벌 장비 공급사로, SK텔레콤 사업에서는 주요 공급사로 참여한다.
[출처: KT. KT와 삼성전자 연구진이 AI-RAN 기술을 검증하는 모습]
KT와는 전남 영암 HD현대삼호 조선소에서 용접·도장 로봇 등 피지컬 AI 서비스를 시험하고, SK텔레콤과는 SK인천석유화학 사업장에서 자율 순찰 로봇과 영상 기반 안전관리 기술을 실증한다. 두 곳 모두 로봇과 AI가 실제 작업에 투입되는 산업현장이다.
이런 현장에서는 데이터 처리 속도가 중요하다. 로봇이 수집한 정보를 먼 데이터센터까지 보내 처리하는 대신 통신망 가까이에서 분석하면 지연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문준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 연구개발 담당 부사장은 지난 9월 “AI가 물리적 지능으로 발전하면서 네트워크는 휴머노이드와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새로운 지능형 기계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산업현장 적용을 추진하는 한편, 일본에서는 AI를 활용한 통신 품질 개선에 성과를 냈다. 삼성전자가 지난 8월 발표한 NTT도코모와의 공동 시험에서는 서비스 전송속도 저하 발생 빈도가 13.1%에서 7.2%로 낮아졌다. 양사가 올해 1월 일본 상용망과 시험망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시뮬레이션에 활용했으며, AI가 품질 저하 가능성을 예측해 사용자별 네트워크 설정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AI 기술을 범용 서버에서 통신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는 가상화 무선접속망(vRAN)에 결합하고 있다. 통합 엣지 AI 플랫폼 ‘네트워크 인 어 서버(NIS)’는 통신 기능과 AI 서비스를 하나의 서버 환경에서 처리하도록 설계됐고, 필요한 연산 성능에 따라 GPU도 추가할 수 있다.
현재는 5G 통신망에서 관련 기술을 시험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AI를 통신망 설계 단계부터 반영하는 6G 개발과도 연결된다. 엔비디아가 GPU 가속 컴퓨팅을 앞세우는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통신장비와 가상화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사업을 넓히고 있으며, AI 통신망 개발에서는 양사 간 협력도 추진하고 있다.
블랙웰 서버 등장…반도체 수요는 통신사 투자에 달려
엔비디아는 이번 GTC 행사에서 RTX PRO 6000 블랙웰 서버용 GPU를 활용하는 AI-RAN 플랫폼 두 종류를 공개했다. 여러 기지국의 신호처리와 AI 작업을 함께 수행하는 중앙집중형 통신망 시설을 겨냥한 제품으로, 델테크놀로지스와 콴타클라우드테크놀로지, 슈퍼마이크로도 관련 서버를 공급할 예정이다.
AI-RAN은 모든 기지국에 GPU를 별도로 설치하는 방식이 아니다. 여러 기지국을 연결하는 지역 거점이나 중앙집중형 시설에 연산장비를 배치할 수 있다. 통신사들이 AI 연산 기능을 통신망 전반으로 확대하면 데이터센터에 집중됐던 GPU와 서버용 메모리 수요도 새로운 영역으로 넓어진다.
삼성전자에도 사업 확대의 기회가 있다. 통신장비와 가상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동시에 메모리와 파운드리 사업까지 보유하고 있어서다. 현재 AI-RAN 사업은 통신장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향후 통신망의 AI 연산 수요가 증가하면 반도체 사업과의 연결 가능성도 커진다.
통신사들이 AI-RAN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단순한 통신 품질 개선에 그치지 않는다. 기존 통신망을 활용해 산업용 로봇과 영상 분석 등 새로운 AI 서비스를 제공하고, 네트워크 운영 효율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버 도입에 따른 전력·냉각 비용과 수익성 검증은 남아 있지만, 통신망이 AI 연산을 담당하기 시작하면서 반도체 업계에는 데이터센터 밖의 새로운 수요처가 등장하고 있다.
